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이제는 연령에 관계없이 많은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1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스마트폰의 역사이지만 메가급의 속도로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4G의 등장과 제조사들의 차별화를 위한 많은 도전, 소프트웨어의 끊임없는 업데이트/버전업과 같은 많은 변화가 그 짧은 기간내에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생활에 더욱 최적화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런 스마트폰 역사를 열었다고 칭해지는 스티브잡스의 아이폰.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티브잡스가 혁신적으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스마트폰'을 어느날 갑자기 들고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다.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겪으며, 특히나 MP3시장에 관심이 많아 오랫도록 지켜보았던 중학교 시절(2006년)을 되짚어보며 스마트폰이 등장하기까지의 나의 관점과 기억을 남겨보고자 한다.
중학교2학년 즈음, 영어듣기를 해야된다는 핑계로 나는 당시 GUI로 조작이 가능하며, 텍스트뷰어와 동영상 플레이까지 지원이 되는 삼성 YEPP의 YP-T9를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MP3 플레이어로 가지게 되었다.
△ 2006년에 출시 된 YP-T9
당시의 MP3로는 꽤나 풍부한 기능을 가진 MP3였다. T9를 고르기까지, 신중했던 성격탓에 여러가지 모델을 찾아보았고 그 관심은 T9를 산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신모델이 엄청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방과후에 학교맞은편에 있던 홈플러스의 전자매장 코너을 서성이며 신모델을 만져보기도하고 갖고싶은 생각을 얼마나 마음으로 삼켰는지 모른다-
물리적버튼이었던 T9와는 달리 점차 터치식버튼이 달린 MP3가 등장하는가 하면, 중3무렵에는 P시리즈의 이름을 달게된 정전식 터치스크린방식의 MP3 YP-P2가 출시되기도 했다.
△ 2007년 10월에 출시 된 YP-P2(좌)와 2008년 12월에 출시 된 YP-P3
당시의 인기있는 피쳐폰들은 엘지의 쿠키, 삼성의 햅틱 등 현재 스마트폰의 외형과 비슷한 풀스크린 방식이었는데(이마저도 P2가 출시된 다음해인 2008년에 출시된것이다), 모두 감압식 터치였다. 손톱으로 꾹꾹눌러야 터치가 되는것과 달리 살짝의 터치로도 인식이되는 감압식 터치의 풀터치스크린의 P시리즈-P2,P3-은 휘양찬란하고 투박하기까지한 피쳐폰과 달리 말끔하고 슬림한 디자인까지 하여 충분히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시절의 내사고범위는 MP3안에서 였으니까 말이다. (참고 : MP3 또는 MP3플레이어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정식명칭은 포터블 미디어 플레이어 이다.)
이렇게 MP3의 모델이 진화한 것은 단순히 삼성의 기술의 발달일까? 내생각엔 그렇지 않다. 삼성의 애플 견제는 MP3시장에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2가 출시되었던 2007년에는 아이팟 터치 1세대가 처음으로 등장한 년도였다. 그전에도 많은사람들이 이용했던, 도넛모양의 버튼이 달린 날씬하게 잘빠진 아이팟 클래식의 제조사 애플에서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정전식 터치 스크린의 바 형식의 MP3 플레이어를 새로 내놓은 것이다.
△ 2007년 9월에 출시 된 아이팟 터치 1세대
MP3를 비롯한 동영상, 텍스트문서 등의 각종 플레이어 기능은 물론 Wifi기능을 지원해 인터넷서핑도 가능한 아이팟 터치는, 물론 이전의 아이팟도 인기가 상당했지만, 애플의 시대를 열게 된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이동통신, 즉 전화와 문자를 비롯한 '폰'의 기능을 넣은 것이 아이폰이기 때문이다.
2007년 아이팟 터치와 더불어 아이폰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하지만 내가 접했던건 이듬해 2008년에 발표된 아이폰 3세대이다.
당시 P2, P3와 같은 포터블 기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아이팟 터치에 전화기능만 넣은 아이폰이 무슨 소용이 있지? 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포터블 기기의 관점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MP3 플레이어에서 시작되어 갖가지 기능을 넣다가(GUI, 동영상 플레이어, 게임, 라디오 등등) 나중에는 전화기능까지 넣는 것인가? 그럼 피쳐폰은 이제 필요가 없네? 당시에는 왠지모르게 꽤나 부정적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스마트폰의 시작이 되었다.
출시된 날짜를 봐도 그렇고, P2와 P3에 관련된 기사에 아이팟 터치가 경쟁상대로 언급된 것도 그렇고, 분명 그 시대의 삼성은 애플을 견제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스펙스펙하며 포터블 기기에 기능을 추가하고, 나름 경쟁을 해왔는데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것을 꺼내니 삼성에서도 꽤나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폰이 발표 된 해에 국내에서 많이 보급된 햅틱만 해도 충분히 P3급의 세련된 디자인을 겸비한 디바이스를 만들 기술이 있으면서 투박한 디자인에, 고장률이 잦고 정확도까지 떨어지는 감압식 터치를 장착한 것을 보아 삼성은 소비자에게 그정도 수준의 폰은 필요가 없다 라고 생각한 것같다. (물론 그 시대의 소비자에게 맞출려는, 그러니까 하나의 트렌트를 따른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 시장 상황에 국내에도 아이폰이란 것이 등장하니 그간 국산 피쳐폰을 사용해 온 소비자들에겐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렇게 인기가 불붙듯 치솟게 되자 포터블 기기 경쟁에 집중하던 삼성은 더 이상의 메인모델 대신 2010년 6월 갤럭시 S를 발표하게 된다.
△ 2010년 1월에 출시 된 넥서스원(HTC제조)와 6월에 출시 된 갤럭시S
2008년에 출시된 아이폰과 비교하면 2년이나 늦은 감은 있지만, 구글의 첫 레퍼런스폰인 넥서스원이 2010년 1월에 등장한 것을 생각하면 안드로이드와 손을 잡고 급히 출시한 날짜로 맞지 않나 싶다.
만약, P3가 나온 2008년과 갤럭시S가 나온 2010년 사이의 공백, 이시기에, 애플이 아이팟 터치를 아이폰으로 진화시킨 것 처럼 삼성도 P시리즈의 포터블 기기를 좀더 개발해서 스마트폰으로 개발하였다면 P시리즈에 이어지는 독자적인 OS를 갖출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때의 경영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 그냥 생각으로만 남겨두자. 어떻게 보면 삼성이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 중에 가장 탄탄한 스마트폰을 출시할 수 있었던 이유가 포터블 기기를 제조하던 베이스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애플의 '포터블기기에 전화기능을 넣자' 라는 발상의 전환과,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구축은 분명 스마트폰의 시대를 열어준 '혁신'이었다. 하지만 그 등장의 아래에는 포터블 기기가 있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끝^_^
옮겨담기-2014.11.11 씀